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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비니킷떼 4

salgii 2022. 9. 30. 03:10

何も分かんない。(feat.I wanna be with you..)

승황


https://youtu.be/zldBTSx9JpE




같은 레지에서 일하는 히라이 모모상이 현진의 머리 위에 꽂혀진 집게핀을 보고 키레! 하며 웃었다.



“선물 받은 거야?”

“네.”

“와 대단하네.”

“대단하긴요. 그냥 부록으로 있는 거래요.”

“에? 아냐. 이거 백화점에서만 파는거야. 메이커 있는 거라 사모님들한테 인기 많은 핀인데?”



현진은 누가 후라이팬으로 자기 대가리를 치고 간 느낌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히라이상은 선물해준 사람이 분명 시바루쿤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거라며 나중에 밥이라도 사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울고 싶어진 현진이었다. 김승민 이 시발롬이....



현진은 여전히 승민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얼마 전에 현진은 출근 훨씬 전인 오전 9시에 비모 50을 몰고 승민의 대학교로 갔다. 숙취 때문에 죽을 것 같았지만 승민에게 뭐라도 한마디 해보려고 무작정 갔다.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하지도 못했는데. 원래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현진은 시부야 디즈니스토어에서 산 스티치 키링이 주렁주렁 달린 스쿠터 키부터 꽂고 봤다.



냅다 정문으로 가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구경하며 김승민 같은 사람을 찾았다. 랄프로렌 베스트나 조다쉬 바지를 입은 호리호리한 170 중반대의 남성만 보면 절로 눈이 갔다가 김승민과 전혀 다른 얼굴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현진은 정말 무모했다. 승민이 어느 시간대에 수업을 듣는지도, 공강이 언젠지도 모르는 채로 광활한 와세다 대학에서 하염없이 김승민을, 어 잠깐. 와세다? 김승민은 시발 게이오댄데? 와 난 진짜 등신쪼다새낀가? 현진은 3시간이 지나서야 본인이 게이오 대학이 아닌 와세다 대학에 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현진의 불찰로 김승민을 찾는 건 실패로 돌아갔다.









***





현진은 요즘 드라마를 안 본다.



맨날 후기를 갈기던 mbc 시청자 게시판에도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김승민을 자꾸 대입시켜서 자살하고 싶었다.



버려진 느낌이 들어서 슬펐다. 물론 승민과 저가 뭣도 아닌 사이라는 건 잘 안다. 근데 생각해봐. 솔직히 우리가 키스만 안 했지 아메리칸스타일로 따지면 우린 벌써 22데이 넘겼어 시발롬아. 속상해서 쿠션에다 얼굴을 박고 엉엉 울었다. 또 본인이 한 실언 때문에 쪽팔리기도 해서 눈물이 났다. 김승민이 보고 싶어. 나 승민이 만나면 뭘 하고 싶지? 사실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명목으로 존나 팬 다음 키스를 존나 갈구고 싶다... 아냐 정신 차려. 양 볼에 셀프 싸다구를 때렸다. 현진은 본능에 따르기보다 좀 더 깊이 생각 하는 습관을 가지기로 했다. 나는 승민일 만나면...



일단 해명을 하고 싶었다. 그날의 실언, 너 같은 놈 널렸단 그 되도 않는 망언. 사실 승민이 같은 사람은 너뿐인데. 내 이 두툼하고 멍청한 조동아리가 삼바를 췄어 미안해. 그리고 그 뒤엔 사실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나 사실 남자 좋아한다고. 나는 니가 좋다고. 너랑 사귀고 싶다고. 이 말을 하고 싶었어. 진짜 그 뿐이야. 근데 시발 김승민 핵심 내용은 듣지도 않고 그냥 가버리고! 똑똑한 명문대생이면서. 이 멍청하고 성격 급한 새끼. 존나 고기도 그냥 김나면 바로 먹을 새끼 같으니라고. 개짜증나. 근데 너무 보고 싶어... 지금 쯤 뭐하고 있을까? 다른 놈한테 고기 사주면서 그 특유의 사람 좋은 포챠코 미소를 짓고 있을까? 아나 갑자기 개빡치네!



쿠션을 던지고 일어나 스쿠터에 올라탔다. 현진은 또 다시 이미 끝났을 수도 있는 사랑 앞에서 무모해졌다. 이건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니깐. 쉼표는 잠깐 쉬는 거지 계속되는 거니깐. 너는 이대로 끝냈을지 모르겠지만, 난 아냐 시발. 이딴 식으로 끝낼 수 없어. 그니깐 딱 기다려라 김승민 이 개새끼야.











승민이 다니는 게이오기주쿠대학교는 생각보다 야무지고 소박했다. 외관만 보면 대학교가 아니고 약간 놀이동산 같았다. 밤이라서 그렇지 낮에 보면 훨씬 예쁠 것 같았다. 승민이 언젠가 한번 캠퍼스 구경시켜 준댔는데. 갑자기 또 생각나서 개같네. 현진은 스쿠터를 대충 주차시키고 눈치를 살살 살피며 슬그머니 캠퍼스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이 지난 게이다이는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비가 점점 거세지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우산을 쓰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현진은 민호네 가게에서 꽁쳐온 촌스런 꽃무늬 우산을 들고 승민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수많은 투명우산의 일행 중 현진의 꽃무늬 우산만 유독 튀듯이, 현진은 혼자였고 외로웠다. 하지만 승민은 오지 않았다. 김승민 이 시발롬. 나쁜 새끼. 나보고 계속 놀아 달랬으면서. 내가 안 놀아줄까봐 돈키 못 그만둔 댔으면서.... 나랑 계속 놀기로 해놓고선. 약속 존나 잘 지키면서 왜 이건 안 지켜. 나쁜 새끼. 나쁜 놈.



새벽 3시가 지나도록 현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시모키타자와에서 원가보다 더 비싸게 준 미즈이로 컨버스가 젖어가는 걸 그저 가만히 느꼈다. 컨버스 색이 진해지는 것처럼 현진의 기분도 점점 젖어만 갔다. 춥고 빡치고 슬펐다. 기다림의 한계가 왔다. 안 올 거 알면서 나 여기서 왜 이러고 있니? 그 이유는,



와규등심이랑 규동 사주던 국물중독자

머리 흘러내린다고 촌스러운 집게핀 사준 미감제로

맹물 비리다고 못 마신다니 이로하스 복숭아맛 사다주고

자살하고 싶다고 농 까면 지 혼자 심각해져선 갑자기 자살 방지 위원회 열고

야구 빠따 들고 또 보자고 했던 놈, 김승민 안 보니깐 진짜 죽고 싶어서 그랬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방울들을 손으로 벅벅 닦으며 현진은 스쿠터를 주차시켜 놓은 가게로 터덜터덜 돌아갔다. 가게에선 엑스 재팬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Endless rain, fall on my heart 心の傷に







현진의 기분은 또 십창이 되어 버렸다. 가사가 마치 자신의 비참한 상황 같아서 눈물이 날 것 같더라. 와 나 이제 일본어 가사도 들리네. 그동안 일본에 있던 보람이 있네. 근데 기분이 너무 좆같다.



왜냐하면 이 노래는 제이팝 잘 모르던 승민이 유일하게 즐겨 듣던 노래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승민이 엑스재팬 진짜 좋아했었는데. 왜 하필 이 노래가 나오는 거야. 왜 나는 한 없이 비참해지는 거야. 만약 이게 드라마고 내가 주인공이면 나 이 작가 존나 고소할거야.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물자 머금었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나는 진짜 승민이가 보고 싶어. 승민이 너는 진짜.....







***









출근 전에 승민을 데리고 타워레코드를 갔던 적이 있다. 그날은 하마사키 아유미의 신보가 나오는 날이었다.



승민과 현진은 각자 좋아하는 씨디를 넣고 헤드폰으로 음악을 감상했다. 역시 이번 앨범도 대박이라고 생각하며 흥얼거리던 현진은 건너편에서 진지한 얼굴로 음악을 감상하던 승민과 눈이 마주쳤다. 승민은 현진을 향해 웃어 보였다. 저 미소... 저 미소 땜에 내가 진짜. 부끄러워서 빨개진 귀를 만지며 헤드폰을 다시 걸어두고 승민에게 다가갔다.



야.

응?

뭐 듣냐?



승민은 헤드폰을 벗고선 씨디를 꺼내 현진에게 보여줬다. 엑스재팬의 싱글이었다. 혹시 알아? 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되게 옛날 취향이네. 라고 생각했다. 가끔 승민은 트렌드에 빠르게 적응해가는 자신과 다르게 굉장히 아날로그적이었다. 승민은 디지털 시계가 아닌 초침과 분침이 달린 시계를 차고 다녔고 돈도 많으면서 요즘 유행하는 아이팟이나 mp3가 아닌 워크맨을 들고 다녔다. 그런 승민이 현진은, 정말 촌스럽고 한결같아서 좋았다.



근데 이름만 알아 노랜 들어본 적 없어.

나는 되게 좋아하는데 너도 한번 들어볼래?



https://youtu.be/5fqnfiwBfIo




현진이 오케이 하기도 전에 승민이 현진을 마주본 채로 헤드폰을 현진의 작은 머리통에 씌웠다. 헤드폰에서 엑스재팬의 Forever love가 흘러 나왔다. 진짜 옛날 밴드 노래 같은데 현진에게 헤드폰을 씌운 채로 웃고 있는 승민 때문에 현진의 가슴은 드럼 비트보다 빠르게 콩닥거리다 단전까지 쿵 떨어졌다. 세상에 승민과 지금 듣고 있는 음악만 남은 것만 같았다. 그때 현진은 생각했다.



난 진짜 얘 때문에 좆됐구나. 이번 여름은 오로지 김승민으로 기억되겠구나.



맨날 엠플로우랑 프리템포, 오오츠카 아이 음반만 듣던 현진은 순전히 승민 때문에 엑스재팬 노래를 클박으로 다운 받아들었다. 취향에도 안 맞는 90년대 그 시절 밴드 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고 승민을 떠올렸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걔 이목구비랑 상냥한 말투, 딱 벌어진 어깨랑 일정한 걸음걸이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옆엔, 현진이 자신을 갖다 붙였다. 상상이니깐 괜찮잖아. 그런 것들을 상상하며 온 방 안을 승민이로 채웠었지. 매일 밤마다. 엑스 재팬 노래를 들으면서 말아야.



승민은 아마 모를 거다. 현진이 휴무날 몰래 승민에게 선물하려고 타워 레코드를 들러 엑스재팬 씨디를 산 것을. 그 씨디는 주인을 잃은 채 현진의 에코백 안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







창빈은 갑자기 들이닥친 현진이 때문에 아주 곤란해졌다. 곧 가게를 닫아야하는데 오코노미야끼를 입 안 가득 물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놈 하나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야 나 문을 닫아야 하는데 현진아.”



눈을 질끈 감고선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있길래 정이 많은 창빈은 에휴 하며 다가가 티슈로 눈물을 닦아줬다. 이민호 황현진 둘 다 개 같은데 한 놈은 자기 자신한테 솔직하지 못해 걱정이고 한 놈은 너무 솔직해서 큰일이다. 불쌍한 새끼들. 하 오늘 집 가서 고쿠센 2기 녹화 했던 거나 보려고 했는데 이 거지같은 물만두 감성충 땜에 다 날아갔다. 진짜 짜증나지만 사실 창빈은 현진을 항상 남몰래 안쓰러워했다. 얜 항상 솔직하고 언제나 진심이고 모든 사람도 저처럼 그럴 거라 생각해서 그만큼 상처를 잘 받는다. 창빈은 말없이 복숭아맛 호로요이 캔 하나를 따줬다.



“이거나 마셔라.”

“복숭아... 형 승민이가 나 맹물 비려서 못 먹는다고 하니깐 복숭아맛 이로하스를 줬다?”

근데 시발 걔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내미는데 손이 존나 떨리고 있는 거야. 나는 있지, 걔가 내 생각해서 복숭아맛 사준 것도 좋았는데 그 떨리는 손 땜에 걜 너무 좋아하게 된 것 같아. 어쩌지 형. 나는 근데 내가 너무 솔직해지면, 너무 좋아하는 티 내버리면 걔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확신이 안서서 괜히 틱틱 거렸는데. 또 다시 버림받기 싫어서 일부러 그랬는데 형, 난 진짜 좀 사랑을 받을 수 없나봐. 형 승민이 보고 싶어 나. 근데 승민인 아니면 어떡해. 근데 이 집게핀도 승민이가 사실 부록으로 받았다 개구라치고 날 위해 백화점까지 가서 사다준 거거든. 그걸 알고 나니깐 포길 못하겠고, 하치코 동상 앞 지나갈 때마다 김승민 생각이 나. 걔가 하치코 동상이랑 진짜 똑같이 생겼거든. 개 같아. 나 그래서 거기 잘 못 다니겠어. 형 나 너무 좆같지?



“어 존나 좆같어.”

“그렇다고 진짜 좆같다고 하면 어뜨카냐 형....”

“아 그렇게 아쉬우면 또 찾아가봐. 여기서 개지랄 떨지 말고”



창빈은 베이컨을 더 몰아주며 말했다. 후회 없이 살아. 그렇게 아쉬우면 뭐라도 계속 해봐. 남이 내 맘 알아서 알아주길 바라지 마. 그런 건 말 안 하면 몰라. 왜냐하면 사람들은 다 빠가거든. 그니깐 걔가 존나 좋으면 좋다고 말을 해. 그리고 버려진다고 하지 마. 그건 니가 버려지는 게 아니고 그냥 인연이 아닌 거니깐. 여튼 그런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말고 질질 그만 짜 새끼야.



현진은 오른손으로 반 남은 호로요이 캔을 찌그러트렸다. 형아. 엉? 나 다시 갔다 올게. 뭘? 김승민 시발롬 찾으러 게이오대학교 한 번 더 다녀올게. 찾을 때까지. 현진은 박차고 일어났다. 야 돈은! 하자 외상으로 해줘 하고 나갔던 현진은 퉁퉁 부은 눈으로 다시 돌아와 말했다.







“형 나 얼음 쫌... 지금 개못생겼어....”







***







창빈이 던진 얼음팩으로 눈을 문지르며 야마노테선을 타고 게이오대학이 있는 다마치역으로 향했다. 스쿠터를 타고 싶은데 얼마 전에 바퀴 바람이 빠져 수리를 맡겨놓은 상태였다. 오늘은 진짜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승민을 찾을 때까지 여기서 노숙할까 싶기도 했다. 승민은 아마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저번에 그랬다. 시험기간엔 도서관에서 밤샘을 한다고. 그래서 현진은 무작정 도서관으로 향했고,



“어?”

거기서 담배를 물고 있는 김승민을 만났다.



현진은 너무 놀라서 굳어버렸다. 승민은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더니 현진이 목각자세로 가만히 서서 나라 잃은 표정으로 자길 바라보고 있더라. 서로 마주본 채로 몇 초 동안 말없이 시선이 오갔다. 한껏 동그래진 승민의 눈을 보며 현진이 화난 표정으로 다가와선 다짜고짜 담배를 뺏어 바닥에 버렸다. 운동화 코로 꽁초를 비비며 현진이 씩씩 거렸다.



“너 원래 안 폈잖아. 왜 펴.”

“현진아”



가라앉은 눈빛과 표정으로 승민이 현진과 눈을 마주했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신경 꺼.”

“...뭐?”



‘머리가 너무 흘러내려. 눈 안 찔러?’

‘신경 꺼.’

왜인지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더라. 그리워서가 아니라 존나 후회가 돼서 그 생각이 났다.

나는 왜 김승민한테 그렇게 말했던 거지. 입장이 바뀌니깐 알겠다. 나는 승민이에게 솔직하지 못했어. 뭐가 두려워서? 승민이가 날 부담스러워 하는 게 싫어서. 부담스러우면 날 떠날까봐. 너무 좋아서 놓치기 싫어서, 그래서 그랬는데. 현진은 울컥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승민을 바라봤다. 입술이 자꾸 떨려왔다.



“너 뭐라고 했냐.”

“신경 끄라고.”

“.....”

“.....”

“...내가 어떻게 신경을 꺼?”

“.....”

“그래 시발. 너 잘 먹고 잘 살아라. 존나 신경 썼던 내가 등신이지. 존나 미안하다 이딴 스토커짓 해서.”



나 진짜 등신 같다. 멍청해서 또 이렇게 끝냈어. 난 또 버려진 거야. 괜히 왔어. 너무 쪽팔려. 현진은 또 다시 자기혐오 타임을 애지게 가지면서 승민을 등지고 척척 걸어갔다. 눈이 다시 부어오는 게 느껴졌다. 시야가 점점 물기 가득한 창문처럼 변하고 있었다. 승민이 보지 못하게 빠른 걸음으로 빠져 나갔다. 우는 모습 같은 거 들키기 싫었다.





승민은 현진이 점이 됐을 때 쯤, 기다렸다는 듯이 콜록였다. 담배가 너무 매웠다. 현진아 나 사실 담배 처음 펴봐. 이런 거 왜 피냐 사람들. 근데 그냥 이거라도 펴야 속이 덜 상할 것 같아서. 나는 너한테 아무것도 아닌데, 그걸 알면서도 자꾸 네 생각이 나는 거 너무 속상해서. 그래서 그랬어.



그러니깐.



나 자꾸 흔들지 마.







***







승민에게 있어 현진은 너무도 다른 사람이라서 자꾸 관찰하게 되는 사람이었다.



관찰하다보니 현진은 재밌는 점이 참 많았다. 까만 동공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손님 오면 파드득 거리며 포스기 두드리는 거라든가. 계산대에서 꿈뻑 거리며 졸다가 셀프 싸다구 날리면서 애써 정신 차리려고 한다던가. 진상 손님 잘못 걸리면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허둥지둥 거리다 손님이 가고 나면 비로소 시발 거리는 부루퉁한 입술 같은 것들, 전부 다 재밌는 것 투성이었다. 그래서 정신 차리고 보면 저도 모르게 눈이 알아서 현진에게 가 있더라.



쟨 분명 인기 많겠지. 엄청 잘생겼고 잘 웃고. 인기 많은 사람들의 아우라가 걔한텐 있었다. 승민은 그게 부럽기보다 신기하고 끌렸다. 강의 듣다가도 걷다가도 현진이 생각났다. 이 감정이 대체 뭔가 싶었다. 나는 현진이랑 친구가 되고 싶은 게 아니야. 하루 종일 즐겁게 해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고 멋있고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 쟤 주위를 자꾸 맴돌고 싶어. 이건...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현진이가 좋은 것 같다. 아니 좋다.



퇴근 할 때마다 말을 걸어 보기도 전에 스쿠터 타고 멀리 사라지는 현진에게 언제 말을 붙여보나 한참 각을 쟀다. 승민의 입장에선 일종의 개수작을 부리려고 했던 거다. 좋으니깐 잘해주고 싶고 곁에 맴돌고 싶은데. 항상 정해진 대로 살아왔던 승민에게 현진은 파박 튀는 스파크와 같았다. 그게 너무 새롭고 재밌었는데. 그럴수록 마음은 점점 커져 가서 점점 아려오더라. 근데 넌 몰랐겠지?



그래, 아마 현진이는 모를 거다.



승민이 항상 도로 위의 현진이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는 것을.

아츠미상 송별회날 곤란해 보이는 현진을 발견하고 다시 식당에 들어가 야구빠따를 챙겨온 것을.

이로하스 복숭아 맛을 들고 몇 번이나 고민하다 결국 유통기한 다 되어버려서 새로 샀던 것을.

새벽에 지하철 운영하지 않는 걸 알면서 현진이랑 같이 퇴근 하려고 매일 5시까지 벤치에 앉아 있다 첫차 타고 가는 것을.

츠타야 갈 때마다 이미 있는 전공 서적 읽는 척 하며 잡지책 정독하느라 툭 튀어 나온 현진의 입술을 귀여워 했던 것을.

술 취한 현진을 데려다주고 저 같은 사람은 주위에 널렸다는 말 뒤에 나올 거절의 말이 듣기 무서워 무작정 도망쳐 왔던 날, 우린 정말 뭣도 아닌 사이가 맞는 것 같아서 하라주쿠 캣스트리트를 따라 한참을 울었던 것도.



현진이는 아무것도 모를 거다.







사실은 비오는 날, 현진이 저를 찾아 왔던 것도 안다. 대체 왜 찾아왔을까? 현진이 말대로 나는 널리고 널린 사람일 텐데. 어쩌면 더 세련되고 말도 유창하게 잘하고 센스 넘치는 사람이 더 어울릴지도. 아니 더 어울릴 텐데. 현진인 왜 왔을까? 사실 날 보러온 게 아닐 수도 있잖아. 내가 착각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날 하루 종일 가슴이 아파서 생각이 많아졌었다. 장마를 핑계대면서 말이지.



사실 아까 담배피다 마주친 현진이 너무 반가워서 승민은 조금 울 것 같았다. 부러 그렇게 모질게 말했더니 현진이 마치 자기에게 차인 것 같은 표정을 지어서 승민은 혼란스러워졌다. 너 왜 그런 표정을 지어? 상처 받은 건 난데. 근데 그 모습이 너무 가슴 아프고, 나는 또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 현진이 또 온다면.



그건 조금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진이도 나와 비슷한 마음일까?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스스로가 너무 찌질해서 되지도 않던 공부하려고 전공노트를 폈다. 공부나 열심히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갑자기 쿠당탕 소리가 나기 전까진.







“게이오대학 법학부 니가쿠세이 키무승민 시발롬아 나와 !!!!!”







마음을 먹자마자 허공을 가르는 외침 땜에 다 말아 먹었다. 모두의 이목이 씩씩거리며 숨을 세차게 쉬는 현진에게 집중됐다. 승민은 너무 놀라서 잡았던 팬탈 샤프를 바닥에 떨궜다. 현진이 휘적거리며 와 승민의 손목을 거칠게 잡았다.



“할 말 있으니깐. 처따라와.”



승민은 대답하기도 전에 현진에게 산책하는 개에게 반대로 산책 당하는 주인마냥 끌려갔다. 주변에서 수근 거리는 소리가 거세졌다.





***





현진은 자기가 소리쳐서 데려 나와 놓곤 놀라서 얼떨떨해져 있었다. 승민은 그게 너무 황현진다워서 좀 웃겼다.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고 퍽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더 할 말이 있는 거야?”

“......”

“현진아.”

“나 너 좋아.”

“?”

“근데 시발 너는 그 날 내 말 다 듣지도 않고 가버리고. 진짜 너무해 너 똑똑하면서 개멍청해 이 시발롬아...”



엉엉 울면서 말했다. 얼굴이 불어터진 물만두 같았다. 현진의 갑작스런 고백을 들어버린 승민은 너무 얼떨떨한데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게이오대 면접 볼 때보다 훨씬.



“너 같은 놈 널렸어. 나 좋아하는 사람 디따 많아.”

“알아.”

“니가 알긴 뭘 아는데. 넌 아무것도 몰라. 그리고 너 같은 사람은 너밖에 없는 것 같아. 근데 내가 그렇게 말했던 거 미안해. 그니깐..... 그니깐 승민아 나랑 계속 놀아.....”



현진은 몸까지 떨며 왕 울자 승민이 현진을 안아왔다. 거짓말처럼 울음이 멈췄다. 승민이 오른손으로 현진을 토닥였다. 현진에게서 미약한 복숭아 냄새가 났다. 이로하스 복숭아물처럼 은은한 냄새를 맡으며 승민이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건 너야 현진아.”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해왔는데.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고 누가 소금 뿌린 것만 같았는데. 현진인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



“나도 미안해. 네 말 다 듣지도 않고 가버려서. 진짜 미안해.”



현진은 아냐아.. 하다가 맞어 너도 미안해야 돼 시발롬 하며 훌쩍였다. 현진의 긴 머리가 눈물에 젖어 피부에 달라붙어 있었다. 승민이 현진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말했다.





“머리 흘러내리잖아 현진아 내가 준 삔은 어떡했어.”

“너 존나 미워서 밟아 없앴어.”

“.....그거 5천엔 넘는 건데.....”

“헐 사실은 가방 안에 있어..... 아니 그게 그렇게 비싼 거였니. 내 일당이랑 비슷하네 미친.....”





현진이 가방에서 집게핀을 주섬주섬 꺼냈다. 승민이 현진의 손에 든 집게핀을 뺏어 머리 뒤에 꽂아줬다. 정갈하고 촌스러운 반머리가 되어버렸다. 이런 거 처음 해봐서... 근데 예쁘다. 그 말에 현진의 퉁퉁 부운 얼굴이 빨개졌다. 그게 귀여워서 승민이 웃음을 터뜨렸다. 뭘 쪼개지 김승민... 근데 웃으니깐 귀여워 강아지 같어... 현진도 바보 같은 얼굴로 웃었다.



“아직도 메가돈 출근해?”

“엉.... 너 그만둬서 다들 욕했어.”

“너무들 하네.”

“너무한 건 너야.”

“내일도 출근해?”

“엉.”

“나 내일 시험 끝나거든.”







승민이 현진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



“내일 너 보고 싶을 것 같은데 데리러 가도 돼?”



현진은 달아오른 얼굴로 그러든가... 하며 맞잡은 승민의 손을 꽉 잡았다.



게이오대학교의 가로등이 밝게 새로이 탄생한 새끼게이커플을 은은하게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