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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목표 : 너를 완전히 놓아주기

salgii 2026. 1. 6. 00:25


https://youtu.be/397fMbmBJo8?si=olbVFVFnLA0IyrZW


1.

오늘은 아니고 얼마 전에, 근처 백화점에서 블프 세일이 한창이었다.
거의 모든 것들이 세일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아주 길다란, 거의 2m가 되는 장대를 들고 다녔었다. 그 장대 끝엔 깃털이 달려있었다. 회색 깃털도 있었고, 하얀색, 분홍색, 내가 제일 좋아하는 보라색도 있었다.
뭔가 고양이 장난감 같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고양이 장난감이었다.
저 사람들 집엔 살아있는 고양이가 있나보다.
저 사람들 집엔 살아있는 고양이가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겠지?
저 사람들은 저 길다란 장대를 들고 집에 돌아가서 살아있는 고양이와 놀겠구나.
부럽다.
너무너무 부럽다.

너무너무… 부러웠다.
너무 부러워서 몰에서 역으로 가는 길까지 울컥거렸다.

더이상 이 세상에 없는 내 고양이가 너무너무 보고싶었다.
잊고 살았던 건 아니었지만 요즘 덜 생각했던 내 고양이 순무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나도 살아있는 순무를 위해 저 장난감을 사들고 본가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 장난감에 실증내는 내 고양이가 보고 싶어서 울적했다.


2.

작년에 떠나보낸 나의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인 내 17살 고양이 순무 (가명이자 별명) 를 2026년이 된 이제서야 거의 보냈다.

나는 이젠 정말 생각보다 많이 괜찮다.
고양이가 살던 본가에 계속 남겨진 다른 가족들의 걱정도 많이 덜어졌다. 각자의 방식으로 놓아주고 이겨내고 있는 것 같다.

슬픔도 마모되어 간다.

마모된다는 것은 잊어가는 것과 다르다.
맨발로 계속 아스팔트를 걷다보면 굳은 살이 배겨 아픔이 무뎌지는 것처럼 같은 슬픔도 계속 느끼다보면 조금 무뎌진다.
순무가 떠났다는 사실은 나에게 있어 여전히 슬프고 눈물을 흐르게 한다.
하지만 이전보다 슬퍼하는 빈도가 적다.
순무가 떠난 5월보단 덜슬프고 덜 우울하다.
매일 울던 것이 일주일에 한 번, 한달에 한 번 되어간다.
아빠는 이게 점점 순무를 잊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순무를 잊는게 아니다.
잊지 않는다. 잊지 못한다.
작별은 했지만 잊지는 않는다.
잊을 수가 없다
니가 나에게 준 기쁨과 위로를 영원히 잊을 수 없어 어떻게 잊겠니 너를 내가


3.

나는 사실 회피성향이 강한 극악무도한 회피니스트 회원인데
순무가 떠난 1달 동안은 회피라는 것을 못했다.
이번만큼은 회피를 못하겠다 회피하니 더 정신병이 올 것 같았고
순무에 대한 기억을 회피하기에는 순무에게 너무 미안했다.
17년이라는 세월은 회피하기엔 너무 길다.

순무와 행복했던 기억들을 내 슬픔때문에 회피하기엔 그 추억들이 너무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그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잠시 행복하다가
순무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다신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걸 알기에
슬픔을 넘어 참담함이 폭풍처럼 밀려 오던 한달을 지나
그 폭풍은 점점 조용해져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나서 17년동안 인연을 맺고
내 돌아오지 않을 어린시절에 순무가 물감처럼 스며있다는게 얼마나 좋은지

내가 덜 슬프려면 순무라는 존재를 부정해야하는데
그러기 싫고 또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슬프지만 매일 밤마다 네 사진을 보고 울기를 택했다.
그게 더 슬프지만 그게 더 너를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이젠 한달에 한 번 그런 이벤트를 가지는 중이다.
점점 주기가 길어지겠지?
그것 또한 슬프네.


4.


굉장히 좋아했던 짤이고
언젠가는 나에게도 닥칠 일이라 생각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순무를 언제가는 놓아줘야하고, 또 슬프지만 내 인생을 살다가 다른 신경쓸 것들이 많아져 자연스럽게 놓아주는 때가 올 수도 있겠지.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정말 자연스럽게 잘 놓아주고 있는 것만 같다.


5.

나는 고양이를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먼저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번에 겪어보니 그건 정말 나의 대단한 착각이었다.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다.

아기 강아지를 일찍 보낸 친구의 마음
15년 함께한 강아지를 병간호하다가 보낸 친구의 마음
둘이 함께 살다가 갑자기 강아지를 떠나보낸 친구의 마음
그 마음들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은 아주 오만했다
그 마음들을 나는 이제서야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그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제가 정말 오만했어요. 저는 등신이었음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주제에 다 이해한다고 대단한 착각을 했다니
나는 바보멍청이찌질이


6.

고양이가 떠나면 나는 진짜 죽고 싶을 것 같다고 생각하곤 했었는데
생각보다 그렇진 않았다.
그냥 어딘가에 있을 것 같고 고양이별에서 잘 살고 있을 것 같고....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내가 죽으면 우리 고양이가 나를 데리러 오겠지 하는 마음이 나를 버티게 해준다.

그러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사후세계가 없으면 어떡하지?
사후세계란 것이 인간이 만든 세계일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것도 아니고.

그럼 영원히 정말 다시 만날 수 없는거네.
>> 이 생각이 들면 정말 하염없이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나는 밤마다 세상을 몇번이고 무너뜨렸다.

고양이라는 존재가 조금 싫어진다.
왜냐하면 순무가 떠나고 순무가 나의 기준점 중에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순무가 없는 세상에서 고양이는 나에게 무의미하다.
나는 내가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순무가 고양이어서 좋았던게 아니라 고양이가 순무여서 좋았던거다.

그래서 다른 고양이를 들이고 싶은 생각이 원래도 없었지만 더 없어진다.
또 이 슬픔을 겪기 싫다기보단
순무를 대체할만한 고양이가 나에게는 더이상 없다. 이제 없다.
그건 우리 순무 하나뿐이었으니깐

하얀 고양이야 이세상에서 흔하디 흔한 존재이지만
따뜻한 우유 하얀색에 분홍 하트코
귀 끝과 코 끝을 연결하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삼각형이 되는 고양이
통통한 수염주머니와 수염 주근깨
리한나처럼 황금초록색 눈
옷걸이모양 입술
통대창같던 몸
몸에서 나는 고소한 우유먼지내음 약간 바닐라 냄새 같기도 한
커다란 앞발을 가진 왕발 고양이
청소기와 오이 낯선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대담한 성격
오뎅꼬치보다 실달린 면봉을 더 좋아하고
향수 몸에 안좋은데 메종프랑시스 커정 바카라루주 냄새에 유독 집착하던 고양이 (왜인진 모르겠지만 그 향수를 옷에 뿌려놓으면 미친듯이 부비고 그 병냄새 맡겠다고 뚜껑열어달라고 요구하곤 했다)
순하진 않지만 착한
기골이 장대한 것에 비해 얇고 당찬 목소리
엄마 젖을 먹은 적이 없어 꾹꾹이를 못하던 고양이
혼자 있는 것보다 가족 네명이 모여있는 것을 추구했던 고양이

사는 동안 2번의 탄핵을 경험하고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을 겪고
10번의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을 보고
날 좋은 봄에 우리를 만나 눈부시게 좋은 봄에 우리를 떠난 고양이는
오직 우리 순무 뿐이니깐

그래서 네가 떠나고 누나의 세계는 약간 무너졌다.
그게 지금 당장은 복구가 안돼 떠난지 한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복구가 계속 안됨
너무 보고싶어 순무야.
>> 라고 블로기에 썼었는데 이젠 어느 정도 복구를 한 듯. 누나 지금은 잘 살고 있음 순무녀석아. ㅎㅎ

물론 아직도 생각하면 너무 슬프고 또 괴롭지만
지금 살고 있는 이 삶 또한 우리 순무가 있었던 삶이니깐
그래서 삶을 다시 선택할 기회가 있다고 해도, 그 삶이 훨씬 행복한 삶이라고 해도
나는 네가 있는 이 삶을 택할 것이다.
너를 잃어 슬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생ㅇ이 너를 만나고 너와 살을 맞대고 부비고
또 너를 보낸 아주 의미있는 생이니깐
너를 만나지 않았으면 이렇게 슬플일도 없겠지

먼저 사랑하는 강아지를 보냈던 친구가 그랬다.
내 삶의 일부분이 강아지를 위해 쓰였으니 그건 행복한 것이라고. 이걸 떠올리면 슬픔을 이겨낼 수 있고 무적이 된다고.

이 말이 나에게 아직도 버팀목이 되어준다.

맞아.
내 이번 생의 이 삶의 17년이
순무의 17년 평생에 쓰인 거니깐
나에게는 일부의 시간이 순무 묘생 전체에 쓰였으니깐



나는 이제 괜찮아!





7.

순무가 떠나고 순무가 몇번 꿈에 나왔다.

첫번째 꿈은 순무가 많이 아팠다. 그래서 깨고 나서도 슬펐다. 내가 한국을 떠나지 않고 계속 함께 살았으면 뭔가 달라졌을까? 내가 떠나고 순무의 루틴을 깨서 많이 스트레스 받았던 것 같아 죄책감이 들어서 죽고 싶었다.

두번째 꿈은
순무가 너무나도 건강한 모습으로 나와서 힘차게 뛰어다녔다. 깨고 나서 여전히 슬펐지만 행복했다.

그 후론 안 나온다 꿈에.

이젠 꿈에 안 나와 야속하지만 어딘가에서 봤다. 꿈에 그 사람이 나오면 그건 그 사람이 날 보고싶어하는 마음이 이어져 내 꿈에 나오는 거라고.

순무는 이제 내가 안 보고 싶은가보다.
그게 괜시리 야속하면서도 기쁘기도 하다. 나를 잊을 정도로 바쁘고 행복한건가 싶어서. ㅎㅎ

순무는 나를 완전히 놓았으니
나도 2026년에는 완전히 순무를 놓아주려고 한다.
천천히 급하지 않게….(아니 구라임, 놓아주기는 내 평생의 숙제임.)

순무는 역시 멘탈갑 고양이임.











사랑하는 법, 사랑하는 것을 놓아주는 법을 알려줘서 고마워.

나를 떠나버린 이 미친 고양이여

너 덕에 누나는 이제서야 어른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