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이렇게 울고 웃을 수 있기를
https://youtu.be/BzV30ibtDe0?si=wyWBhOn2Zwd0NjA2
奇跡
Provided to YouTube by JVCKENWOOD Victor Entertainment Corp.奇跡 · Quruli奇跡℗ Victor EntertainmentReleased on: 2011-06-01Composer: 岸田繁Lyricist: 岸田繁Auto-gene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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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번 생은 처음이라 다들 힘들다지만 민호의 이번 생은 유독 스펙타클한 것만 같다. 엄살이 심한 편이 아닌데도 그랬다. 이번 생은 좀 힘들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이게 뭐가 힘들어. 나만 힘든 거 아냐. 다 힘들어. 자기연민은 죄야. 내가 힘들면 안 돼. 할머니 앞에서 힘든 모습을 절대 보이면 안 돼. 할머니는 자식도 며느리도 일찍 보냈잖아. 할머니한테 남은 거 나 하나뿐이잖아. 그러니깐 나는, 힘든 티를 내면 안 돼. 돈 아끼려고 하루에 한 끼를 편의점 오니기리로 때우고, 받아야 할 돈이란 거 잘 알면서 오히려 따지는 게 더 얕보일까봐 그냥 넘기고, 쓰는 언어가 달라 입안에서 맴돌던 말이 단내가 돼도, 어제는 웃어줬던 사람들이 오늘은 알아들을 수 없는 비언어로 나를 짓뭉개도, 나는 어떻게든 타지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척을 해야 한다고.
근데 솔직히 힘든데. 이런 생각하기 싫어서 민호는 스스로가 건조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정 없고, 외로움 그런 거 모르고, 어쨌든 혼자가 편한 사람.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니 진짜가 되었다. 누구랑 얽히면 고민만 많아질 뿐이다. 어차피 모든 건 끝이 오기 마련이고 알면서 끝날 인연에 목매는 건 나만 힘드니깐 민호는 자기가 선인장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메마른 선인장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인생 살기가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 식구들을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떠나보낸 민호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사실, 그냥 이대로 콱 죽어버릴까. 하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울컥울컥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민호는 살아갈 용기가 없는 만큼 객지에서 죽을 용기도 없는 겁쟁이새끼였다. 용기는 겁이 없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볼 수 있을 때 생기는 건데, 민호는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민호를 보면 꼬리를 감아오는 타누키코지의 길고양이들, 유리멘션에서 보이는 선홍물감색의 노을이 그렇게 만든다.
밥을 챙겨주던 타누키코지 고양이 중 유독 병약해 보이던 한 마리가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다. 부재가 일주일이 넘어갈 때쯤, 민호는 얇은 이불 위에 누워 다다미바닥의 무늬를 피부로 느끼며 생각했다. 사실 너무 외로워. 누군가의 일상에 자리하고 싶어. 지금 내 상황에선 그게 사치고 사치를 누리기 위한 노력도 안 하면서 그런 욕심이 났다.
인정했다. 나는 혼자가 편한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며 혼자인 자신을 위로했을 뿐이라고.
나는 한평생 스스로가 선인장 같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봐.
선인장은 물이 없어도 잘 자라지만 아무도 물을 주지 않으면 죽고 만다. 민호는 물주는 법을 잊은 지 오래다.
그런데 콩나물이, 누군가가 만들어준 맛 더럽게 없고 국물만 자박해서 싱거운 콩나물이 촉촉했다. 축축하다는 쪽이 맞겠지만 오늘의 콩나물도, 저번 주에 받았던 밍밍한 두부조림도, 간이 너무 짰던 육전도, 단맛 하나 없이 퍽퍽했던 오뎅볶음 등등 전부다, 촉촉하게 민호에게 물을 줬다. 쿼카를 닮은 이름 모를, 이제는 이름 아는 한지성이.
KIKI BIBI LILY
いつまでも そのままで 泣いたり 笑ったりできるように。
지성은 요리왕이 되었다.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은 요리를 맛있게 하는 사람과 할 줄 아는 요리가 많은 사람,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지성은 후자였다. 지성은 모르지만 지성의 요리는 맛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성은 매일매일 누군갈 살리기 위해 요리한다는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한달이 지났다. 자살요주인물 남자, 민호는 2주 동안 살아있다. 손목에 상처는 추가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 지성은 충분히 보람을 느꼈다. 알지도 못하는 남자 끼니 챙겨주느라 정작 본인은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하면서 자꾸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굴렸다. 이게 뭐하는가 싶다가도 신경이 쓰였다.
사실은 걱정이 됐다. 그래서 분리수거 하면서 누가 커터칼을 그냥 버리고 갔길래 휴지통 바닥 밑으로 발로 차서 치워버렸다. 괜히 그랬다. 민호가 살았으면 좋겠어서. 인생 좆같죠. 내가 댁의 인생이 그동안 어땠는지 잘 모르지만 대충 알아요. 인생은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제 인생도 그렇거든요. 그리고 좀 살아본 사람들은 그래요. 원래 그렇다고. 원래 내 맘대로 하나도 안되는 게 인생이고 행복이 있으면 불행도 있다고. 근데 시발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건가. 당장 힘이 든데 원래 힘들어, 다 힘들어, 그니깐 살아 이딴 걸 위로랍시고 하는 건가.
차라리 힘든 사람한테 괜찮냐고, 진짜 괜찮냐고 해주고, 재밌는 얘기나 해주고, 맛있는 걸 사주고 좋아하는걸 보여주면서, 그래도 이 실 없는 세상, 생각보다 아름답고 즐겁다고 어필이라도 하지. 다쳐서 피 철철 나면 약을 발라주고 괜찮냐고 해줘야지 다 다치는 거니깐 엄살 부리지 말라고 하면 어느 누가 살아갈 의지가 생길까요. 그래서 지성은 또 좆같은 반찬을 만들어서 촌스러운 튤립무늬 반찬 통에 담았다. 와 나 곧 한식요리 자격증 따도 될 듯. 이게 다 옆집 자살중독자 형 때문이다. 형이 살았으면 좋겠다. 형이 좋아요. 안됐어요. 그래서 꼭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 마음을 가득 담아 또각하고 뚜껑을 닫았다. 이 진심이 새어나오지 않게. 그래서 형한테 전해져서 조금이라도 살아갈 의지가 생기신다면. 그걸로 됐다.
***
잭다니얼 다 비우고 현진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현진이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술을 못 마시는구나. 그래도 예전엔 도수 4.8 마시고도 이상한 일본가요랑 한국가요 섞어서 노래 불렀었는데. 훨씬 독한 양주를 마시고도 예전처럼 니시노카나와 소녀시대 노래를 매쉬업 시키지도 않고. 승민은 거기서 저가 몰랐던 세월의 현진을 읽었다. 그 세월엔 어떻게든 도쿄를 지워보겠다고 아등바등 살았던 현진의 땀과 눈물이 느껴졌다. 술 못하면서 술 많이도 했을 거다. 나도 그랬어. 너 보고 싶고 그리워서. 무사비에 온통 너라서. 졸업할 때까지 계속 생각이 나서. 근데 또 지울 순 없어서. 괴로워도 자꾸 생각나는 편이 나으니까.
승민은 팔베개를 한 채 숨을 내쉬는 현진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냥 이렇게 가만히 보고 싶었던 순간들이 울컥울컥 솟아오르곤 했었다. 이건 현진이 도쿄에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가만히 아무 방해 없이 보고 싶었다. 1인용 사랑의 마음이 그걸 바랐다. 상한 머리칼, 피어싱, 구멍 하난 굳었네, 날카롭지만 사실은 본성처럼 둥근 턱선, 세목 수채용지처럼 부드럽게 까슬한 피부, 옻칠한 도자기 같은 입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담았다. 너무 여전해서 눈물이 난다. 사실 너 변한 거 진짜 하나도 없어. 너 똑같아. 이토록 시간이 흘렀고 머리색이 변해도 내가 너무 사랑하던 황현진 그대로야.
***
현진이 머리를 싸매며 눈을 떴을 때, 공교롭게도 집이었다. 익숙한 누런 벽지를 보다가 김승민이 생각났다. 벽지색깔과 어제 승민이 입었던 가디건 색이랑 똑같아서라고 생각했다. 승민이랑 어떻게 헤어졌지. 승민인 잘 들어갔나? 연락처가 없으니 알 길이 없었다. 승민이 미루쿠무라에 다시 찾아오지 않는 이상, 둘은 다시 만날 수 없다. 며칠 전에 승민을 만났던 게 기적 같다.
살아가다 문득문득 생각이 날 때가 있었다. 도쿄에서 겪었던 트라우마를 다 잊고 싶은데, 다 잊고 정말 잘 살아보려고 이렇게 삿포로에 왔는데, 가끔 승민이 생각났다. 도쿄에 관한 기억 주머니 속엔 승민도 있어서 다 잊으려면 승민이도 잊는 게 맞는데도 그랬다. 걔가 줬던 핸드크림을 버리지도 못하고. 비싸고 좋은 거라서 버리기 아깝다는 틀린 이유를 대면서.
나이트쉬프트 땜에 저녁 늦게 미루쿠무라에 출근하니 지성이 피골이 상접한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세팅하고 있었다.
“야야 정신 차려. 얘 바둑알 풀린 것 봐.”
“바둑알... 알... 오늘은 알감자조림 당첨.”
“이 새끼 뭐라는 거야? 너 요새 요리 하냐?”
“야 황, 나 한식자격증이나 딸까봐.”
지성이 부은 눈으로 그동안 자기가 했던 요리들 인증샷을 현진에게 보여줬다. 현진은 오 제법인데? 그렇게 맛있어보이진 않지만. 이라며 냉철한 리뷰를 했다.
“됐어. 형은 잘 먹거든.”
“형? 그 때 그 자살 형?”
“야야 그렇게 말하지 마... 그 형이 고맙댔어.”
“...너 그 형한테 반찬 만들어 주냐? 동거해? 뭔 우렁각시야?”
“에라이 이 물음표 살인마야. 걍 신경 쓰이잖아. 좀 그래가지고.”
현진은 황당했다. 신경을 쓰인다고 거의 매일같이 한식반찬 만들어서 바리바리 싸다주나? 야 너 그거 존나 오지랖이야. 지성은 엎드리며 말시키지 말라고 했다. 지가 먼저 얘기했으면서. 한지성 이 오지라퍼. 니 그 형한테 관심 있지. 아니라고 넌 니 가디건이나 가져가. 뭔 가디건? 어제부터 계속 여기 있던데 니 꺼 아냐?
현진은 지성이 내민 가디건을 잡고 당황했다. 유리멘션의 누런 벽지 색감의 가디건. 이거 김승민껀데. 현진은 그걸 잡고 멍하게 굳었다. 돌려줄 방법이 없는데 승민이 오지 않는 이상. 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하지? 버릴 수도 없고 다시 만날 때까지 갖고 있어야하나? 근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라고 생각했을 때 가디건에서 뭔가 잡혔다. 가디건 주머니 안에 빳빳한 종이가 있었다. 일본어로 적힌 명함이었다. 아무 무늬 없는 하얀 명함엔 한자와 함께 가타카나가 적혀있었다. キム•スンミン 김승민, 그리고 주소와 전화번호. 아이폰을 들어 번호를 누르고 메세지를 적었다. 안녕 승민아 나 현진인데, 네가 가디건을 놓고 가서 이거 어떻게 해야 할지 싶어서.... 까지 적고 현진은 그냥 번호도 저장하지 않고 폰을 꺼버렸다. 나중에 하자. 나중에. 나 왜 승민이 명함 보자마자 들뜬 거지. 명함보기 전에 왜 가디건보고 들뜬 거지. 나는 진짜 한심하다. 다 버리고 올 거면 다 버렸어야지 왜. 나중에 연락하자. 주인 잃은 가디건을 에코백에 처박고 명함은 주머니 안에다 넣었다.
***
퇴근하고 바람이나 쐴 겸 저번에 심었던 아보카도 씨앗도 볼 겸 겸사겸사 옥상으로 올라갔다. 웬일로 새벽에 사람이 있었다. 현진은 놀라 자빠질 뻔했다. 인기척에 돌아본 남자는 현진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황현진?”
“민호형?”
서로 님이 대체 왜 여기에?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어버버 거렸다. 여기 살아? 네 저 404호... 난 304혼데 반갑다. 현진은 인기척 없던 304호, 그리고 지성이 우렁각시마냥 반찬 챙겨주는 민호가 자기가 알던 그 민호형이라는 것에 놀랐다. 새삼 세상이 참 좁았다.
민호는 담배를 털며 말했다. 너 되게 여전하다. 멀리서도 알아봤네. 현진은 그 말을 듣고 놀랐다. 여전하다고? 아, 나 여전하구나. 나는 변한 줄 알았는데. 그래서 일부러 탈색을 계절마다 했는데 머리색이라도 바꾸면 나 좀 바뀔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뭘 바꾸고 싶은 건지도 모르면서.
그러고 보니 승민이도 날 한 번에 알아봤었지.
‘너는 많이 변했네.’
이거 사실, 일부러 한 말일지도 몰라. 날 바로 알아 봤으면서 변했다고 하다니 모순적이다. 현진이 작게 실소를 터트렸다. 승민인 다 알고 있었구나.
사실 난 변하고 싶어서 발버둥 쳤지만, 사실 변한 건 하나도 없고 여전하다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계절처럼 휙휙 바뀌지 않는다. 하물며 계절도 다시 돌아오는데 사람이라고 오죽할까. 바뀌어도 그 사람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사람이다.
민호는 말했다. 여전하단 거 나쁜 뜻 아니야.
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도 여전해요. 저도 나쁜 뜻 아니에요.
민호와 현진은 같은 교양에서 만났다. 조별과제를 해야 하는데 자율로 조를 정하는 바람에 외국인인 둘은 조용히 선택 밖으로 빠졌다. 일본 애들끼리 모여 하하호호거릴 동안 현진은 쓸쓸하게 고개를 떨구고 신발로 책상다리를 툭툭 찼다.
너 혼자냐?
그때 익숙한 언어로 말을 걸어오는 민호가 구세주 같았다. 둘은 그 이후로 친해지진 않았지만 가끔가다 마주치면 인사는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민호는 항상 앞치마를 입고 팔토시를 낀 채로 현진에게 인사했고 현진은 천연석채가루가 묻은 손을 흔들었다. 그게 다였다.
한동안 뜸하다 둘이 다시 만난 건 서로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었을 때였다. 학비충당이 어려운 현실에 지친 민호와 믿을 것 하나 없는 현실을 버틸 수 없었던 현진의 손엔 나란히 자퇴증이 쥐어져 있었다. 둘은 서로의 표정을 보고 버거움을 읽었다. 민호는 그래도 저가 더 연장자고 어른이니깐, 어른이면 어른스러워야 하니깐, 그리고 현진의 소문을 귀띔으로 들었으니깐, 나도 힘들지만 얘 퉁퉁 부운 눈이 안쓰러워서 그럴 사이가 아닌데도 걔 어깨를 두드렸다.
야, 고생했어. 너 꼭 잘 살아.
사실은 이 말을 나 자신한테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두요.
“그럼 한지성이 말했던 이민호가 진짜 형이었던 거네.”
현진이 과거를 더듬거리던 민호를 붙잡았다.
“한지성?”
아, 맨날 맛없는 반찬 갖다 주는 애. 세기말 툴립 모양 반찬통에 일주일에 두 번씩 한국 반찬 갖다 주는 그 애. 현진은 팔짱을 끼고 고민하더니 말했다. 이런 말을 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걔가 형이 죽을 것 같대요.
뭐?
형이 죽을 것 같다고 그러더라구. 막 귀찮게 하죠? 걔가 원래 좀 그래요. 맨날 옆에서 시답지 않은 소리나 하고.
넌덜머리 난다는 현진의 말에 민호는 크하하 웃었다. 내가 죽을까봐? 하하 걔 진짜 재밌는 애네.
‘그거 아끼는 거거든요. 그니깐 꼭, 갖다 주셔야 해요. ‘
라고 말하던 그 비장한 얼굴이랑 목소리. 내가 죽을까봐 그랬구나. 걔는.
“저 걔랑 같이 알바하면서 만났거든요. 근데 어후 맨날 자긴 인간 어떻게 되든 관심 없다면서, 막 자기한테 의지하지 말라고 하면서 1부터 100까지 다 부담스럽게 챙겨주고, 뭐 안달 난 사람처럼. 걔 진짜 웃겨요. 진짜루. 걔는 절대 모를걸요. 자기 되게 차가운 도시 속의 쾌남현대인인줄 알걸요.”
현진은 신나게 지성을 깠다. 민호는 그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첫 번째로 현진에게 있어 지성은 편해보였고, 두 번째론 타박하는 욕엔 애정이 담겨있었다. 현진은 민호의 눈치를 보다 살짝 덧붙였다.
“근데 걔 좀 이상하긴 해도 나쁜 앤 아니니깐. 안 좋게 생각하진 마세요.”
웃겼다. 실컷 욕하고선 안 좋게 생각하지 말랜다.
지성이 오지랖 정말 넓어. 나 죽을까봐 그렇게 개노맛 반찬 굳이 굳이 만들어가며 주고. 솔직히 처음엔 부담스러웠다.
“걘 오지랖이 존나 넓은데 걔 혼자만 그걸 몰라.”
“맞아요. 오지랖 개 넓어.”
오지랖 넓은 사람들은 자꾸 원치도 않은데 부담스럽게 이리저리 일상에 파고드니깐 그게 거슬릴 때가 있다. 필요 없는 걱정을 하고 필요 없는 걸 챙겨줘서 짐만 만들고. 그런 사람들을 사람들은 오지라퍼라면서 보통 싫어들 하지. 특히 그런 거에 질린 우리 세대들은.
근데 오지랖이 좀 필요한 사람도 있잖아. 내가 그랬어.
그래서 지성이 되게 고맙더라. 필요 없는 반찬 자꾸 챙겨줘서. 나 안 죽는데 자꾸 죽을까봐. 그런 것도 어떻게 보면 내가 죽든 말든 걔랑 좆도 상관없는 일인데 걔는 자꾸 말리려고 하더라. 나는 그런 게 좀 필요했는지도 몰라.
현진은 그렇게 말하는 민호가 신기했고 예전보다 행복해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행복한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일 죽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안심이었다.
“나중에 한지성이랑 같이 술이나 마셔요.”
“그려.”
마지막으로 봤던 눈이 퉁퉁 부은, 세상에 버려진 표정을 짓던 무사비의 현진보다 지금의 현진이 훨씬 평안해보였다. 이경윤 같은 놈한테 더 이상 잘못 걸리지 않고 현진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행복을 오랜만에 빌면서 민호는 과거를 떠올렸다.
캐리어에 있는 짐 다 때려 박고 벤치에 앉아 돈만 있었으면 계속 하고 싶은 조각을 하면서 잔존했을 캠퍼스를 마지막으로 감상했다. 그러다 현진을 안주 삼아 사람들과 떠들며 스토커게이새끼한테 잘못 걸렸다고 동정 받는 경윤을 봤다. 민호는 그때 조용히 저 새끼 좆됐음 좋겠다.하고 남몰래 빌었었다. 황현진이랑 친하지도 않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민호의 감이 그렇게 바랐다.
그리고 민호는 승민을 봤다. 현진한테 인사하면 옆에 꼭 붙어있었던 김승민. 뚜벅뚜벅 걸어가서 흙탕물을 저보다 나이 많은 선배한테 부어버리는 승민을 민호는 봤다.
‘도자기로 선배님 대가리 깨부수려다 참은 거예요.
그니깐, 인생 똑바로 사세요. 남 갖고 놀지 말고 씨발아.’
라고 말하며 기름통을 던지고 경윤을 등지고 걷는 슬픈 김승민을 민호는 봤었다.
“김승민이랑은 아직 연락해?”
그 물음에 현진이 풍선 터지는 소릴 들은 사람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다.
“승민이 맞나? 이름이 헷갈리네.”
“맞아요 승민이. 형 기억하네요.”
“기억하지. 걔가 흙탕물 선배한테 끼얹어서 난리도 아녔어.”
걔가요...? 걔가 그럴 애가 아닌데. 승민이 되게 조용하고 얌전하고 선배들한테도 깍듯하고. 되게 착한데.
“욕까지 했는데. 걔 다시 봤어. 이거 좋은 뜻이야.”
“누구한테 그랬는데요?”
“이경윤한테.”
대가리가 터지는 느낌이다. 현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승민이 소문 낸거 아니란 거 잘 알면서도 마음 한 켠으론 의심하고 믿을 수 없는 놈이라 못질하고 그렇게 승민을 도쿄 무사시노에 버리고 온 자신이 너무 죄스러웠다. 승민이는 진짜 그럴 애가 아닌데. 승민이 흙탕물 부으면서 욕하면서 다 젖어가면서 뭔 생각을 했을까. 너 왜 그랬냐.
민호는 그냥 너도 알아야할 것 같아서. 하며 현진에게 인사를 했다. 현진은 민호가 가자마자 재빨리 명함을 꺼냈다. 그리고 거기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옥상에 울려 퍼졌다.
-여보세요.
“승민아 난데. 황현진.”
현진..현진이? 무슨 일이야. 승민의 목소리만 들어도 의아한 게 느껴졌다. 바보 같은 놈. 현진은 울컥했다. 왜 그랬어. 너 왜 안 하던 짓을 했어. 뭐 때문에.
“너 가디건을 놔두고 갔더라고. 명함 있길래 보고 전화했어. 이거 돌려주려고.”
-아.... 괜찮아. 그거 그냥 너 가져도 돼. 괜히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해.
여전히 쓸데없이 배려심이 넘친다. 승민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널 힘들게 하면 말하라고.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고. 현진은 오기가 생겼다.
“아냐. 돌려줄게. 언제 시간 괜찮아?”
-명함에 적힌 작업실 주소로 택배 부쳐줄래? 내가 택배비 다 낼게. 진짜 미안해 현진아. 괜히 나 때문에
“니가 대체 뭐가 미안한데. 왜 자꾸 미안하다고 그래?”
상대방의 말문이 막혔다. 현진은 너무 속상해서 기가 막혔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화냈다. 잘못도 없는데 왜 미안하다고 그래? 미안한건 난데. 내가 다 잊겠다고 너처럼 착한 애 그냥 한 뭉텅이로 취급하고 다 던져버리고 도망쳐왔는데. 연락처 알려달라는 것도 씹고. 근데 너는, 나한테 내가 듣고 싶었던 소리 해주면서 보고 싶었다고, 내 행복을 빌어주고. 뭐가 미안한 건데 대체. 현진의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밤공기와 맞닿아 차게 식었다. 추위에 몸이 떨렸다.
“이 주소로 내가 갈게.”
-.....
“나 하고 싶은 얘기도 있어. 그리고,”
네가 보고 싶어. 현진은 말하면서 눈물을 닦았다. 이게 무슨 감정인진 모르겠다. 이런 감정은 너무 오랜만이라서 낯설다. 아무 말도 없는 멈춘 신호음 같은 승민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럼 내가 갈게.
승민이 말했다. 너 지금 어디야? 밖이지?
현진은 너무 당황해서 어버버 거렸다. 우리 집 옥상인데.
잠깐만 기다려. 한 3분만.
뭐?
이게 무슨 상황이지? 상황파악이 다 되기도 전에 옥상 문이 열리고 거짓말처럼 승민이 있었다.
“야, 야 너, 너 뭐야? 뭐야?”
“나도 이 아파트 살아. 근데 곧 이사 가려고 했는데.”
나 마주치면 네가 너무 힘들까봐. 너 힘들게 하기 싫어서.
시공간이 텅 비어 오직 이 옥상과 승민과 현진, 이렇게만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좀 걸을까?”
앞에 축제 한대. 구경하고 싶어서 가려고 했거든. 같이 갈래? 승민의 제안에 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
밤이 되면 유독 화려해지는 스스키노는 사람이 우울할 틈도 없이 밝다. 정처 없이 코카콜라 광고판이 크게 달린 건물과 니카 아저씨를 지나 오도리공원으로 향했다. 삐끼들이 달라붙을 때마다 승민은 다이조부데스 하고 친절하게, 하지만 단호한 억양으로 말했다. 승민의 일본어 억양은 여전히 듣기 좋았다. 부산 사투리가 섞여서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있잖아 승민아. 너 그때 왜 그랬어.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입안에서 맴돌다 목구멍에서 사라진다. 오도리공원에서 사람들이 유카타를 입고 춤을 췄다. 적당히 흥겹고 시끄러워서 그렇게 정신없지도 않고 모두 행복해보였다.
“너도 유리멘션에서 사는 줄 몰랐어.”
엄청 놀랐어. 승민이 웃으며 말했다. 그때 술 취하고 너 데려다 주는데 너가 이끄는 곳이 거긴 거야. 나 진짜 놀랐어. 설마 설마 했는데 유리멘션이더라고. 왜 몰랐지. 현진은 생각했다. 어쩌면 승민과 저는, 어차피 만나게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같은 대학에 오고, 우연히 같은 기숙사가 되고, 우연히 이렇게 삿포로에서 만나고, 우연히 현진이 바이트하는 술집에 승민이 왔고,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살고.
우연이 이렇게 많이 모이면 이건 기적을 넘어 운명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의 우연을 삭제해도 둘은 필연적으로 만날 팔자이기 때문이다.
“곧 방을 뺄까 싶어. 집 알아보는 중이야.”
“왜?”
현진이 묻자 승민이 씁쓸하게 말했다. 그냥... 나는 너 힘들게 하기 싫어.
“너 다 잊고 진짜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어. 현진아, 이거 거짓 없이 진심이야.”
종교도 없는데 매일 기도했다. 현진이가 도쿄를 떠나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어딘가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면 그걸로 됐다고. 딱 하나만 더 욕심을 부려서, 저기 괴로운 기억 중 파편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근데 이건 진짜 욕심이니깐. 그리고 또 하나. 한번만 보고 싶다고. 잘 살고 있는지 내 눈으로 한번만 확인하고 싶다고.
현진은 좀 화가 났다. 자꾸 미안하다고 자기 존재 자체에 사과하는 김승민이랑 저를 힘들게 하기 싫다고 갑자기 떠난다고 하는 김승민이 미웠다. 이 모든 게 내 탓 같아서 더 화가 났다.
“너 그랬잖아. 나 보고 싶었다며. 근데 이렇게 다시 가겠다고?”
“너 이렇게 잘 살고 있잖아. 그걸로 됐어 진짜야 나는.”
“너 진짜 웃긴다 승민아. 뭐가 돼.”
현진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악 쓰듯 말했다.
“널 이해 못하겠어. 너 왜 경윤선배한테 물 뿌리고 왜 그런 말 했어? 나 다 들었어. 그리고 왜 보고 싶었다면서 그냥 보고 니 할 말만 하고 가냐. 내가 너 보면 힘들 것 같다고? 힘들게 하기 싫어서 간다고?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내가 힘든지 좆같은지 니 어떻게 알아. 왜 자꾸 미안하다고 해, 너 잘못도 없는데 왜 바보같이 미안하다고 해. 그리고, 그리고.....”
하늘에서 불꽃이 터졌다. 하나비가 온 하늘을 가득 메웠다. 마치 무지개 색으로 잔뜩 칠한 스케치북을 검은색으로 덧칠한 다음 이쑤시개로 그린 선들 같았다. 그 선들은 현진의 말을 삼켰다. 보고 싶었어, 그리웠어. 나도 미안해.
큰 불꽃들 소리에 현진이 흠칫하고 어깨를 숙였다. 승민이 곁에 다가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소리 너무 컸지 방금.”
“조금?”
기숙사 밖에서 성년의 날을 즐기던 미니 폭죽도 무서워하던 현진이. 땅이 흔들리는 것보다 재난 경보음과 사이렌 소리가 훨씬 무섭다던 현진이. 근데 타쿠마 머리 위로 물 잘만 뿌리고 야렸던 용감한 현진이. 나도 너한테 배운 거야.
승민은 현진의 두 귀를 두 손으로 막았다. 굉음들이 소거되고 우주에 남겨진 것만 같은 진공의 소리들이 났다. 승민의 눈에서 소리 없이 색색의 폭죽이 터졌다. 지구가 자전을 멈춘 것만 같다. 귀가 막혀진 손길이 다정해서 울고 싶어질 때쯤, 승민이 현진의 입술에 입술을 포개었다.
좋아해. 너무 좋아해서 그랬어. 줄곧 좋아해왔어.
불꽃이 스파크를 내며 터질 때 현진의 심장도 같이 터져버렸다. 끝과 시작이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
오늘도 세미나는 거지같았고 세상은 차가웠다. 컨버스를 질질 끌며 지성은 하나비 소리를 비지엠 삼아 힘없이 집으로 향했다. 알감자 조림도 만들어야 하는데 죽도록 피곤하다. 근데 저 사람은 진짜 죽게 생겼으니깐. 죽도록 피곤해도 죽도록 알감자 조림을 존나 만들어야해. 아 황현진 시켜서 감자나 깎으라고 할까. 지성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새까만 하늘에 별이 몇개 떠있었다. 그리고 하얀 옥상에 민호가 있었다. 지성은 심장이 쿵 하고 곤두박질쳤다. 그냥 담배 피러 나온 거겠지? 눈이 나빠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데롱데롱 난간에 달린 민호가 너무 위험하고 금방이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 같아서 지성은 소리도 못 지르고 재빨리 멘션으로 뛰어 들어갔다. 프린트가 다 떨어져 나가는데 그것도 모르고 존나게 뛰었다. 우당탕탕 옥상에 도착한 지성을 보고 민호는 자기도 모르게 뭐야 라고 소리 내어 말해버렸다. 지성은 숨을 헉헉 몰아쉬며 숙였던 등을 피고 소년만화 주인공 마냥 비장하게 외쳤다.
“아니 젊은 사람이! 그런 극..극단적인 선택하면 못 써요 이 사람아.”
민호는 이게 뭔가 싶어 미간을 찌푸렸다.
“뭔 소리예요.”
“살아요.”
“예?”
“살아서 같이.....”
같이 뭘 어쩌겠다는 거지. 씩씩거리며 눈자위가 붉어진 지성이 웃겨서 민호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지켜봤다. 현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형이 죽을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 사실 그거 듣고 좀 너무 현실성 없어서 거짓말일 수도 있다 생각했는데. 얘는 혼자 존나 너무 진심이었다. 민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반대로 지성은 심각했다. 아니 왜 아직 난간에 기대있어. 좀 앞으로 왔으면 좋겠는데. 갑자기 뛰어내리면 어떡해...
“우니동 먹어요.”
“뭐?”
“네?”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니깐 혀도 삼바를 춘다. 지성은 지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어서 반문했다. 갑자기 뭔 우니동? 하 오늘 교수가 점심으로 우니동 얘기해서 그런다... 지성은 그냥 뻔뻔하게 얘기했다. 존나 무개연성 작렬이었다.
“우니 몰라요? 성게알. 개비싼거.”
“알긴 한데.”
“그거 먹어요. 내가 살게요. 그러니깐”
그러니깐 살아요. 삽시다. 보란 듯이 삽시다. 대체 뭐가 당신을 힘들게 했는 진 모르겠지만 일단 살아요. 자살하지 마요. 자살하면요, 다음 생이 없대요. 유튜브에서 스님이 그랬어요. 나 불교도 아닌데 이걸 왜 아는 진 모르겠는데 하여간에. 형이 꼭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람은 다 힘들어요. 그니깐 이게 다 힘드니깐 엄살 피우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다 힘드니깐 나도 충분히 힘들 수 있는 거예요. 자기연민은 죄가 아니에요. 나라도 날 불쌍하게 여겨야죠. 나라도 나한테 어리광 피워야죠 안 그런가요.
자기연민. 민호는 그 단어를 듣자마자 가슴이 시큰거렸다. 한평생 자기연민이 죄인 줄로만 살아왔던 민호에게 자기연민은 필요하다는 그 말이 너무도 충격이었던 거다.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해파리처럼 살다보면, 언젠가 행복도 오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하는 지성의 눈빛에 거짓이 한 톨 없었다. 민호는 좀 주저앉아 울고 싶어졌다. 그걸 억누르고 눈을 한 번 비비고 웃으며 말했다.
“아니 정말 감동적인 연설이긴 한데요. 나는 자살할 생각이 없어요 이 사람아.”
“예...?”
“내 꿈은 건강하게 자연사하는 건데.”
사실 건강하게 자연사하고 싶어서 담배도 끊으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노력만 하고 있긴 하지만 하여간에 고마워요. 지금 존나 오지랖인거 알죠? 근데 고마워요. 고마워요. 나는 사실 누군가의 오지랖이 필요했다고. 건강하게 자연사하기, 이거 정말 꿈이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은 그런 것이었다. 별것 아니지만 민호에겐 현실이 자꾸 훼방을 놓아 버티기 힘들 때마다 그 꿈을 포기하고 싶단 생각이 울컥 찾아오니깐.
지성은 약간 혼란스러워졌다. 지금 나 혼자 지랄하고 쑈를 하고 자살방지캠페인열고 난리난리를 떤 거구나.
“그럼 팔에... 왜.”
“아 이거?”
본가에 고양이 키우는데 세 마리라 좀 사나워요. 걔네랑 놀다가 팔 다친 거예요. 벙 찐 지성의 표정이 아기멍게 같아서 웃겼다. 그리고 벅찼다. 세상엔 한지성처럼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신경 써주고 괜히 의미부여해서 맴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달이 지구를 돌듯이 말이다. 달이 없으면 지구도 죽듯이. 나도 지성이 없었으면 자연사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니동은 먹으러 가죠.
민호가 딱지가 떨어져 나가 하얀 선들이 된 팔을 내밀었다.
그동안 반찬 해줬으니깐, 내가 살게요. 개비싼 우니 먹으러 가요. 좋은 곳을 알아요.
지성은 민호가 내민 손과 하얗고 볼록한 흉터를 번갈아 보다 손을 맞잡았다. 거기 혹시 연어알도 있나요? 분위기 환기하려고 부러 눈치 없는 질문을 던졌다. 네 있어요. 수산시장이라 다 있어요. 민호는 진짜 웃음이 나서 웃었다. 억지웃음이 아니라 건조했던 심장이 촉촉해져서 웃음이 났다. 지성의 손이 축축했다. 세상이 수분기를 머금은 계란찜처럼 촉촉하다.
자꾸 뒤돌아보게 돼서 살아가게 되는 것들이 있다.
타누키코지의 길고양이들, 유리멘션에서 보이는 선홍물감색의 노을들이 그렇고 한지성이 그렇다.
***
세상엔 참 별스러운 일들이 많다. 그 별스러운 일들이 하나로 뭉쳐져 사람을 때리기도 하고 감싸주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은하수 같은 바다를 만들고 우린 끊임없이 거기에 몸을 맡기고 두둥실 실려 간다. 마치 해파리처럼 말이다.
잘 살아보려고 노력해도 그게 참 쉽지 않은 날들이 너무 많다. 그 쉽지 않은 날들 속에서 별사탕처럼 별스러운 소박한 행복들이 가득해져서, 어느 날 닥칠 수도 있는 불행을 버틸 힘들이 됐으면. 그런 것들이 당신을 붙잡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終わり。